담배를 끊은지도 2년차다. 엄밀히 말해 담배를 끊었다기보다는, 전자담배에 정착한지 2년째다. 물론 전자담배에 처음 시도해서 바로 정착한 건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오래 전에 하카도 써봤고, 저스트포그도 써봤고, 이름 모를 이상한 것도 썼었다. 물론 전자담배로 금연해볼 생각에 시작했지만, 결국 연초와 병행하다가 방치해둔 추억의 기기들이다. 간헐적 단식처럼 금연 결심도 약간 간헐적으로, 그리고 발작적으로 하게 되다보니 그 후로도 아이코스는 2개나 써봤고, 편의점에서 호기심에 일회용도 써보고, 칼리번도 써보고, avp도 써보다 지금은 다시 하카로 돌아와서 정착했다. 집에 미처 못 쓴 코일이며 액상이며 굴러다니는게 꼴보기 싫어서 좀 아까운 아이코스와 개인적으로 참 잘썻던 칼리번을 제외하고는 전부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뭐 이베이프같은 커뮤니티의 전문가들처럼 전자담배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그냥 내겐 취미라기보단, 평범한 담배 대용 기기다. 만족스럽긴하지만 전자담배도 담배니까 언젠가 끊어야지~ 싶던 차에 좋지 않은 소식이 들린다. 전자담배에도 세금을 빡세게 물릴거란다.
1_ 세금 내놔라 이놈들아
백해무익한게 담배다. 이승기 노래 중에 뭐 '때론 몸에 나쁜 게 영혼에는 좋은게 될 수 있단걸~' 하는 가사가 있는데 쌉소리다. 영혼에 너무 좋은 나머지 영혼이 몸을 버리고 저승으로 직행해봐야 저런 가사가 안나올텐데.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마케팅을 하던 사람인데 내가 근무했던 곳 중에는 암 전문 병원도 있었고, 거기서 폐암 3a기 어르신을 본 뒤로 하나도 공감안된다. 술은 뭐 쌉인정하지만, 흡연은 찐으로 좋을거 하나도 없다는걸 흡연자인 나도 안다. 그럼 이 나쁜 걸 왜 자꾸 팔까? 그냥 금지하면 어떻게든 안필텐데. 뭐 생각할 것도 없다. 세금 때문이다.
담배가 4500원으로 오른게 2015년인가? 그 당시 내 주변에선 유행어처럼 '더러워서 안 핀다!' 라며 분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화난 건 화난 거고, 중독은 중독이라는 걸 이 때 알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대부분은 '더러워도' 피더라. 나도 그렇고. 더러워서 안피려고 했는데 정작 더러운건 하루종일 담배피고 싶다고 후덜거리다 4500원 정도야 뭐! 하며 합리화하는 내 모습이었다. 물론 국민 흡연율로 보면 그 때 담배를 끊은 분들도 많다. (리스펙) 포스팅 때문에 통계청 자료를 좀 뒤적여봤는데 그 때 흡연자는 감소한 것 같은데 담배를 통해 얻는 세금은 어땠는지 모르겠다. 아는 사람 댓글 좀 달아줘라.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어쨌든 당시의 담배 가격 2배 인상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었다. '국민건강'이라는 절대 방패와 함께 국민 흡연율의 감소라는, 흡연자조차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절대적으로 '옳은 행위' 가 그 근거였으니 저항은 심했지만 그만큼 국민적 지지도 커서 지속할 명분이 있었다. 결과를 봤을 때도 흡연자가 감소했으니, 담배값이 오른건 흡연자로서 좀 속상하지만 좋은 정책이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단순히 그 때 잠깐 감소한게 아니라 이후로도 꾸준히 감소추세를 보였으니까 더 할 나위없지. 하지만 지금은? 담뱃세 인상 이후 일반담배 판매량은 최대를 찍었고, 판매량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4500원이라는 심리적 장벽이 상당히 허물어졌다는거다. 5년만에.
4500원이라는 가격은, 당시에도 국민의 조세저항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책정한 가격이다(라더라). 너무 비싸면 흡연율이 너무 줄어서 나라 주머니가 텅텅 빌테고, 그렇다고 너무 낮으면 굳이? 싶은 상태가 됐을 테니까, 적당히 비싸면서 적당히 필만한 가격을 정했겠지. 지금 현재를 보면 4500원 선에서 흡연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가 간과해선 안되는 부분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은! 지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라는 점이다. 코로나로 국민이 힘드니까 현찰을 주는 나라다 여기가. 킹갓민국... 그러니 나라는 국고를 채우고 더 많은 정책들과 발전을 위해 돈이 필요하지만 - 지금 당장은 담배값을 덜컥 올릴 수 없는 상황. 예-전 대선토론할 때 '세금 확보는 어떻게 할겁니까!' 라던 질문에 대해 지금의 대통령님이 뭐라고 대답했었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그에 대한 대답들이 지금 하나 씩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알잖나. 지금 액상전자담배 세금말고도 뭐 ... 이건 다음에 얘기하자. 어쨌든,
정부는 지금, 돈이 필요해보인다.
2. ??? : 전담 액상 그거 세금 올려봐야 세수확보는 얼마 안됩니더
정부는 액상 세금을 인상해도 세수 확보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고 하면서, 이번 전자담배 액상 증세는 일반 담배와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형평성. 이거에 대해서 진짜 할 말이 많은데... 내 의견을 말하기 전에 정부 생각은, 액상형 전자담배도 일반 담배처럼 똑같이 해로운데 지금은 세금이 한참 낮으니, 담배만큼 내라는거다. 예전 담뱃세 인상할 때 근거보다 조금 멋도 없고 공감도 안된다. 목적자체가 국민 건강이 아니라 세금 확보잖냐. 아니면 국가의 비호를 받는 <어떤 담배회사> 수익 증대가 목적이거나.
그래, 겉만 보면 맞는 말이다. 이미 지난 2019년 정부의 액상전자담배 사용자제 - 사용중단 권고 크리티컬로 액상전자담배 이용자는 대거 이탈했고, 기존의 10% 수준 ? 혹은 그 미만의 이용자들만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 정도 사람들이 그거 산다고 뭐 얼마나 달라지겠나. 물론 세수 확보는 되겠지만 드라마틱한 세금 증가는 이루어지지 않을 거다. 근데 말이다. 내가 이번 포스팅 작성을 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다니면서 본 정부 발표 자료들은 이상한 지점을 보인다. 정부가 2019년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자제 권고를 하고 이어 사용 중단 권고를 한 뒤로, 담배 판매량이 늘어났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지금부터는 내 개인적 망상이다.) 흡연자라면 동의하겠지만 전자담배에 정착하기가 어렵지, 전자담배를 버리는건 참 쉬운 일이다. 액상전자담배 세금이 올라가면 (입호흡용 30ml 액상기준 세금만 10만원 이상, 폐호흡용 60ml 기준 세금만 20만원 이상) 나처럼 라이트하게 전자담배를 피는 사람들은 당장이라도 걍 담배를 필거다. 우리나라가 어디 뭐 집집마다 수퍼카 타는 사우디(맞다, 이건 100% 선입견이다.)도 아니고 서민이 90% 이상인데 당연한 일이지. 분명히 담배 판매량은 점프할거다.
근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게 끝이 아니다. 매해 금연을 결심하는 사람들은 액상전자담배는 너무 비싸니까 궐련형전자담배로 전환될거다. (참고로, 지금 우리나라의 궐련형전자담배 시장에서는 KT&G의 릴과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가 가장 유명하고, KT&G 점유율이 아이코스를 뛰어넘었(었던것같)다.) 새롭게 흡연을 결심하는 사람들은? 흡연 안했으면 좋겠지만 흡연을 시작한다면, 돈 때문이라도 액상전자담배로 진입하진 않겠지. 유해성이고 자시고 말하자면, 국내에서 가장 거대한 담배회사가 '유일하게' 투자하고 있지 않은 곳, 즉 액상전자담배로 흐르는 흡연자의 길목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는건데... 킹리적 갓심이 발휘되서 얼마 전에 주식을 샀다. (1개 샀다)
3. 아니 그래서, 형평성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봐요
나는 솔직히 지금 전담에 정착한 삶이 너무 평화롭다. 여자친구에게 담배냄새가 난다고 등짝을 맞지도 않고, 사무실에서 담배냄새난다고 직원들한테 놀림받지도 않으며, 아는 형님이 '야 나 담배하나만' 할 때 '에 전자담배 피는데용' 하고 놀릴 수 있어서 좋다. 경제적으로도, 담배를 필 때보다 한달로 치면 한 십만원 덜나간다. 담배피느라 누래졌던 치아도 좀 하얘졌고 차와 손가락과 옷과 머리카락과 피부와 신발과 방안과 화장실에서는 더이상 재떨이 쩐내가 나지 않아서 좋다. 담배 필 때보다 컨디션도 좋고.
아마 정부는 나같은 일반 유저들의 이런 저항도 생각했을거다. 그래서 세금을 올리겠다고 말하기 전에 니주를 겁나게 깔아놨다. 정확히는, 정당성이나 명분을 확보하려고 열-심히 애는 썻다. 대표적인게 액상전자담배 유해성 발표에 대한 건이다. (발표는 결국 아몰랑과 겁주기가 다였지만) 이건 포스팅 때문에 검색하다 알게된 건데, 2015년에 담배 세금을 올릴 때도, 귀신같이 액상전자담배 유해성을 말했더라 -그 때는 궐련전자담배가 들어오기 전이니, 액상전자담배만- 그리고 그 때의 발표도 결국 호도와 날조였다.
2015년 1월에 담배 세금이 올랐고 같은 월에 발표된 뉴스를 보니, '전자담배 연기에, 일반 담배 2배의 니코틴이 들어있다' 라는 기사가 있더라. 그래서 이리저리 찾아보고 조사해봤다. 흥미롭게도 담배는 그냥 담배 연기를, 액상전자담배는 니코틴 원액 증기를 비교했더라. 아니 어떤 쪼다가 니코틴 원액으로 베이핑을 하나. 법으로 액상 니코틴 농도를 1%로 정해놓고 100%따리 니코틴으로 연구를ㅋㅋㅋㅋ킼ㅋㅋ케켘ㅋㅋㅋㅋ 하지만 이런건 진짜 관심이 없으면 알 수 없는 부분. 결론적으로, 많은 국민들은 그런가보다 하며 그냥 담배를 폈을거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유해성 결과마저도, <전자담배도 일반담배만큼 유해해용!> 이라는 발표의 근거가 한 6개월은 필 수 있는 액상을 한 번에 흡입했을 때의 결과를 바탕으로 했다. 어, 전자담배 협의회에서도 말했던데, 물도 그렇게 먹으면 죽는다. 결국,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액상전자담배 유해성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정부나 연구소 차원에서 검사를 해봐도 저렇게 억지 호도나 말도 안되는 기준으로 연구하지 않는 이상 액상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해롭다는 근거를 찾을 수가 없으니, 결국 루트를 바꿨다. 그 망할 놈에 '형평성' 으로. 액상전자담배 유해성발표를 계-속 미루고 미루다가 발표한 내용은 온통 과장되거나 현실성 없는 데이터가 가득했는데, 심지어 애초 액상전자담배 사용 중단 권고의 근거가 됐던 미국의 액상전자담배로 인한 폐손상 사건이, 정상적인 액상이 아닌 자체 제작된, 그것도 대마가 포함된 액상으로 인해 발로했고 국내 발생 사례가 없는 건 물론 가능성도 거의 0%에 가깝다는게 확인 됬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중단 권고는 풀지도 않은 채로 세금을 올리겠단다. 아니 뭐, 순서가 이상하지 않나? 내가 액상전자담배를 써서 그런게 아니라 논리적으로 어딘가 이상하지않나? 나만 이상한가? 자, 정리해보자.
액상전자담배가 '더' 해롭다는 <과학적인> 증거는 없고 '덜' 해롭다는 <과학적인> 증거는 있다. 그런데 액상전자담배는 여전히 사용 중지 상태고, 담배는 가격인상 이후 판매량 최고치를 갱신하며 날개 달린 듯 팔리고 있다. 그런 와중에 액상전자담배의 액상이 담배보다 세금이 낮으니까 세금을 담배만큼 올리겠단다. 시장을 아예 박살내버리겠단다. 이게 뭔 (심한 말)
4. 일단 결론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좀 나눠야겠다. 이번 포스팅에서 구체적인 근거나 출처같은건 안다뤘는데 다음 포스팅 올라갈 때 - 귀찮지 않다면 올리겠지 - 호로록 올려보겠다. 궁금한 사람이 있으면 국민청원에 전자담배협회 총연합회에서 올린 글이 있으니 그걸 보면된다. 나도 그거랑 네이버 뉴스기사들 참고했으니까 정보는 차고 넘칠 거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의 결론이 뭐냐면, 사실 딱히 저항하겠다기보다는, 내 손으로 뽑은 내 대통령, 내 정부가 바라는데로, 세금이 이대로 오르면 그냥 다시 <에쎄 체인지>피고 세금 흥청망청 내고 그러겠다는거다. 다시 내 이는 누래질거고 다시 여자친구한테 등짝을 맞을거고 다시 직원들한테 담배냄새난다는 말을 들을거고 다시 아는 형님한테 매일 3개비 씩 담배를 삥뜯기는 삶이 눈 앞에 훤히 그려진다. 어쩔 수 없다. 내 벌이는 한정되있고 세금이 오른다고 원래 피던 용량이 막 아껴서 펴지는건 아니니까. 오늘은 내 전자담배 액상 사러가는 길에 사장님께 미리 작별을 고해야겠다. 아마 실직자가 되실 것 같으니까. 진짜, 와우,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나라에 살고 있음이 실감된다.